episode 6. Bloody Mary by. 조공명 ****************************************************************************************************************
" 어머나~~ 어서와요. 멋진 왕자니~~임. ♥♡ "
순식간에 좌중의 남자 99.9퍼센트가 멍하니 그녀만을 바라본다. 붉은 머리카락에 같은 색 눈동자. 딱 달라붙는 아슬아슬한 차림. 그리고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오히려 무색하리만치 요염한 미녀.
" 처음 뵙겠습니다. 주왕 폐하. 그리고, 왕후전하. "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말하고는 있지만, 정말 저런 타입은 질색이다.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얼굴에는 일반 여선들의 9할은 단번에 넘어가게 할 수 있는 미소를 짓는다.
...절세가인 두 명의 한판승이라고 뒷 날 누군가가 말했다지. -_-;
" 어서 오게. 금오의 왕자여. 그대들의 제안은 물론 환영하는 바이네. "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주왕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양전만은 차갑게 미소지으며 긴 앞머리칼 사이로 옆에 서 있는 왕후를 바라보았다.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입 모양.
허수아비 왕이라는 아버님의 말씀답군...
" 폐하의 식견에 경의를 표하며, 아버님을 대신하여 은의 앞으로의 협력을 기대하겠습니다. "
조금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추켜세우는 말투에는 오히려 경멸 비슷한 감정까지 섞여 있다. 물론,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어나서 돌아서려는 양전의 팔짱을 확 잡아끼며, 붉은 머리의 왕후가 교태를 부린다.
" 어머어머~ 예쁜 왕자님, 벌써 가려고? ♡ 그럼 안되지~ 자~ 축제를 해야죠오~ ♡ 그쵸~ 주왕니~임♥ " " 물론이지! 자, 금오의 여러분. 오늘은 맘껏 먹고 마시세! ...근데 달기야! 떨어져라!! " " 아잉~ 주왕님, 혹시 질투? ♡ " " ...... -_-; (지금 날 사이에 두고 뭐하는거야) " " 삐지지 마앙~ 달기는 오직 주왕님의 것이잖앙♡ 암튼 왕자님, 놀다갈거지? ♥ "
싸늘하게 걸리는 입가의 미소와, 온 몸에 돋아나는 닭살을 애써 물리치며, 양전은 마주 웃었다.
" 그럼 감사하게...... "
천 명은 넘게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연회장 가득가득 차려진 진수성찬과 고급술들. 그리고 가희들. 사이에서 코가 빠져라 놀고 있는 주왕을 한심함과 동정심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양전은 옆에서 날리는 꽃발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저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봐선 안될 것을 봤다는 것을 느끼고야 말았다.
" 오랜만이군 달기~ 여전히 챠밍한데!? " " 어머 몰라~잉.♥ 명이는(...더헉!!) 너무 솔직하다니깐~ ♡ 어머머? 그런데 문중 짱(...;;)은 안 온거야앙? ♡ " " 왕자가 뒷처리를 맡겼거든. 아마 안 오겠지. " " 아아~ 사랑하는 문중 님이 안 오시다니, 내 마음은 찢어져잉~♡ "
...뒷처리 맡겨놓은 내게 지금쯤 뼈저리게 감사하고 있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양전은 연회장 바깥으로 나갔다.
집요하게 달라붙는 궁녀들과 여선들을 어떻게 어떻게 뿌리쳐가며, 간신히 테라스로 나와 숨을 돌렸다.
피곤하다......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침 그믐달 무렵이라 달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성 여기저기에 휘황찬란하게 커져있는 등불들은 충분히 주위를 식별하고도 남을 정도의 빛을 비추고 있었다. 밤하늘의 빛깔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누군가도.
" 왕자! "
돌아본 시선에 누군가가 비친다. 와인잔이 들린 쟁반을 들고 마치 일류 웨이터같은 포즈로 다가오는 조공명과... 그리고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 조공명... ......왕천군. " " 오랜만이군 왕자님. 잘 지내셨나? "
명백한 비웃음에 양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 지을 것 까지야 없잖나? 시킨 일을 제대로 해줬는데 말이지. " " 그 정도의 보상은 받아가겠지. 그럼 굳이 고마워할 필요가 있을까? "
킬킬거리는 아직 어린 소년의 모습이 왜 그렇게까지 혐오스러워보이는 건지. 양전은 더 이상 말을 하기도 싫어서 조공명에게 화제를 돌렸다.
" 무슨 일이야? " " 아. 주왕이 네게 선물을 보냈다. " " ...주왕이? "
조공명이 내민 케이스에는 커다란 루비에 화려한 백금의 장식이 되어있는 귀걸이 한 쌍이 들어있었다.
요란하게 탁자를 치는 소리에 좌중은 모두 깜짝 놀라며 자세를 경직시켰다. 단, 상석의 소년만은 태연한 얼굴로 팔짱까지 낀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결국은 금오와 은이 손을 잡아버렸잖아! 예상하고 있었으면 왜 처리를 하지 않은건가!? "
한 선인의 힐문에 태공망은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 막판에서야 알아챘다구. 그 땐 손쓸 도리가 없었어. 나라고 뭐든 다 아는 건 아니니. " " 워프 게이트를 닫아버렸으면 금오와 은이 접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잖나! " " 그럼 게이트를 통과해서 후퇴하고 있던 천상의 부대는 어떻게 되고? "
태공망의 말에 그들이 입을 다문다. 뭐라 말할 거리는 더 있겠지만, 태공망의 옆에서 형형하게 눈빛을 빛내고 있는 호위대장 황천화나, 잔뜩 굳은 표정의 총대장 황비호의 앞에서 더 이상 천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있지는 못했다.
" 태공망. "
주위가 조용해지고 나서야,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긴 수염의 노인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 네. 원시천존님. " " 지금까지의 체계는 변함없다. 전 연방군의 총사는 여전히 너고, 그러므로 이 뒤의 사태 수습 역시 네게 맡긴다. 잘 처리할 수 있겠나? "
참으로 관대해보이는 말이지만, 그 뒤에 숨은 중압감과 플러스 질책까지 똑똑히 느끼며, 태공망은 미소지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여전히 자신만만해보이는 그 평소대로의 표정으로.
" 노력하겠습니다. "
태공망의 말에, 원시천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스크린의 화면이 사라지고, 이제 다시 이 자리의 최고자가 된 태공망은 장난끼까지 어린듯한 미소를 지었다. 테이블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옆에 놓인 대나무 차스푼을 잡고 빙글빙글 돌린다.
" 너무 걱정하지 마. 금오와 은이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악당들끼리 손을 잡은 이래로 잘 되는 그룹은 없었으니까. 그 피의 여왕님이 단지 옛날옛적의 주 독립에 따른 복수를 위해서 금오와 손을 잡았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고, 어차피 금오도 마찬가지야. 서로 뒷 속셈이 있는 이상, 그런 식으로 결합된 단체를 갈라놓는 것쯤은... "
무의식적인지 의식적인지, 말과 함께 대나무 스푼을 가볍게 꺽어버린다. 그 묘한 연출효과에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진 부하들에게, 그는 미소지어보였다. 한순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