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보현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게 못내 걸리기는 했지만... 아까의 짧은, 하지만 격렬한 (겉으로는 그렇 게 안 보였을지 몰라도) 설전으로 지칠대로 지친 두뇌는 제기능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듯 했다.
" 좀 쉬어두는 게 어때? "
갑작스럽게 그들의 머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세 소년은 놀라지도 않은채 가지각색의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 아... 무성왕. 해적 토벌은 무사히 끝낸거야? " " 아아. 물론. 너야말로 회의는 어땠어? " " ...으음. 그럭저럭. "
교섭결렬이다-라고 섣불리 말해버리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라 태공망은 입을 다문채 고개를 저었다.
" 그다지 좋지는 않아... 녹화해뒀으니 나중에 볼래? " " 으윽. 난 그런 건 사양이다. 골치아프다구. " " 그런 건 부자지간에 똑같다니까. "
회의 시간 내내 지루함을 못 견뎌 종이에 낙서를 한다던지 애꿎은 테이블을 괜히 찬다거나 태공망의 머리카락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천화의 행적(?)에 대해 빠짐없이 발설하려던 태공망은 말 중간에 입이 막혀버린채 우송(?)되어 갔다.
" 웁.... 읍읍으으읍!! (통역:뭐하는거야!?) " " 피곤하다며? 방에 가서 자라구. 사.숙. ^^++ "
멀어져가는 아들과 상관의 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황비호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스카이블루의 머리카락을 가진 또 다른 상관이 (둘 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는 데 공통점이 있었지만) 미소짓고 있었다.
" 지겹겠지만 무성왕, 회의 녹화 화면을 봐주셔야겠어요. " " 에? 어째서... " " 보시면 알겁니다. "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보현에게 왠지 황비호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태공망이나 이 소년이나 최고의 전략전술가이긴 했지만 종류가 조금 틀렸다. 태공망이... 속마음을 단단하게 감춘채 자신 혼자 상처받고,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는 경향 이 있다면... 이 쪽은... 타인의 아픔은 물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열어보이며 자신의 아픔까지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뭐... 둘 다 원하든 원하지않든 타인의 동정...을 끌어내는데 비할수없이 뛰어난 인물들이고, 냉혹비정해야하는 전 술가에게는 오히려 태공망보다 보현이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역시, 성격에 안 맞는 건 별 수 없다.
" 이 쪽 디스플레이를 봐주세요. " " ......! "
...그리고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화면을 보며, 연합군 최우수 파일럿이자 태공망의 명을 받아, 모든 군대의 실질 적 총책임을 맡고 있는 개국무성왕 황비호는, 자신의 그런 생각을 더더욱 확고히 굳힐 수 있었다.
" 아아... 조잡한 계획이었지만, 완벽하게 당했지. 나중에 장관들에게 아까 말에 대한 변명을 늘어놔야겠는걸. " " 당한 것 치고는 왠지 기분좋은 얼굴이군. "
문중이 냉담한 얼굴로 말하자 양전은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 뭐어... 상대가 싸워볼만한 자라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 " 바로 그거야! 역시 싸움이란 일방적인 건 아름답지 못해! 화려하고도 불꽃튀는 열전! 우아함이 꽃피는 별의 바다에서의 한줄기 일섬(一閃)! 역시 아름다운 자들끼리는 마음이 통하는군, 왕자!! " " ...... "
...내키지않아...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양전은 문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그래서, 조사는? " " 아까 금광성모에게 맡겨두었다. 3일 이내로는 처리한다고 했으니 곧 연락이 오겠지. " " Thanks... "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가볍게 찡그리는 양전을 보며 문중이 다시 한마디 했다.
" 피곤한 것 같은데, 쉬어두는 게 어떤가. " " 아? 그렇게까지 피곤한 건... " " ...... "
무언의 재촉에 양전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 알았어 알았다구, 문.태.사. 그럼 잠시 눈 좀 붙일테니, 금광성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깨워줘. "
문중의 입가가 약간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양전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문중은 쿡쿡거리고 있는 조공명에게 내던지듯 말 했다.
" 뭐가 그리 우습지? " " 아아... 별로. 나에게는 너.희.들.의 그.런.류.의. 집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거든. "
웃음을 지우지 않은채, 왼손을 흔들며 문중과는 반대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 자아, 그럼~. 나도 이만 실례하지. " " 어디로? " " 이래뵈도 명색이 근위대장이라구. 저번처럼 왕자님 혼자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잔소리많은 영감들에게 설교들 어야 하니까 말야. 아아~ 역시 어디든 뛰어난 자는 세간의 질시를 받기 마련이지만. "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마도 그가 한 말이므로 틀림없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이라. 문중은 아직도 종종(아니, 자주) 파악이 되지 않는 [동료]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시선을 보냈다. 가벼워보이는 행동에 도저히 일반인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상식의 소유자가 왕자의 근위대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것은, 금오의 삼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물론... 힘 그 자체로서는 [삼강(三强)] 중 하나라 불리우지만. 글쎄... 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 지 않는 행동패턴이란...
" ...내가 왜 이런 생각을. "
고개를 저으며 그는 눈 앞의 서류철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저 왕자가 깨어나기 전까지 다 처리해놓아야 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서류더미에 매달릴 기색이길래, 빨리 방으로 보내버렸던 거니까.
" 그건 그렇고... "
지극히 자신만만한 어조로, 태연하게 자신들을 몰아부치던 갈색 머리카락의 소년. 소문은 그를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침착하던 소년의 표정에서는, 왕자를 처음 보았을 때의 동요는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왕자의 동요 역시, 그가 왕자의 보좌 겸 '새' 교육관이 된 이후로 한번도 본 적이 없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보이는 지나친 집착도.
" ...쓸데없는 생각이다. "
마음 속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조그만 의혹을 무시해버린채,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눈 앞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그나저나 너... 그 금오의 총사에게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 같군. " " 뭐어... 당연한 거 아냐? " " ...그렇겠지만... "
왠지 흐려지는 말 끝이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태공망은 옥정진인을 돌아보았다. 태공망의 시선에 옥정진인은 주춤 상반신을 살짝 젖히다가 난감한듯한 얼굴을 했다.
" ...왜 그런 눈으로 보지? "
역시 수상해... 라고 생각하며 태공망은 다시금 살짝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그런 시선에 거의 동요하지 않는, 보현 다음으로 자신을 잘 아는 그건만 찔린다는 표정을 온 얼굴로 표시하며 (원래 무덤한 표정뿐이니만큼 조그만 표정변화도 무척이나 잘 눈에 띄어버 린다) 반문이라니...
" 별로~ "
휙 고개를 돌리고는 눈 앞의 스크린에 손가락을 갖다댄다. 화면에 비치는 수식이 몇 개 바뀌더니 정면의 커다란 풀 스크린에 푸른 머리카락의 미청년이 나타났다.
" 양전... Destroyer 최고 통치자 통천교주의 외아들. 모친은 불명... 다방면에 걸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
아래로 죽- 늘어진 화려한 약력들을 읽던 태공망의 시선이 의아함을 띄었다.
" ...응? 이 공백 기간은 뭐야...? 행방불명되었다가... 7년 후에 발견... 되어서... 이 경력들은 전부 그 이후잖 아...? 이전에는 별다른 말은 없고... "
중얼거리던 태공망은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뒤의 옥정진인의 순간적인 동요를 성공적으로 캐치해냈다. 살짝 미소를 머금었지만, 그에 대한 추궁 없이 다시금 화면을 넘겼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모니터만을 주시하던 태공망은, 피식 웃었다. 그 미소가 왠지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느낌이라, 옥정진인은 약간 미간을 찌푸린채 그를 바라보았다. 태공망은 한동안 가만히 화면을 주시하다가, 다시 손을 움직여 화면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사진이나 프로필 대신 무수한 광점들이 새겨진 검은 화면이 나타났다.
성도(星圖).
" ...작전계획도냐. " " 아아. 내일쯤 붙을 것 같거든. " " 내일...? " " 응. 저번에 올라온 보고 중에서, G-7구역 중 하나인 민스성에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있었어. 교묘한 선동작전의 결과인 것 같은데, 기왕 선동을 했으니 다음에는 성공적으로 점령을 해줘야하지 않겠어? " " 금오 측의 선동이라는 건가? " " 상당 규모였거든. 절대로 주모자, 선동자, 바람잡이 없이는 안 돼. 이제까지 과도한 세금으로 머리싸매고 있 던 민중들에게는 매력적인 유혹이었을거야. 넘어간 그들에게 뭐라 할 말은 없지. 기껏 스스로 성주를 몰아내줬으 니 다음은 금오의 '저세금 고지원' 정무관이 와줘야 하지 않겠어? 점령의 형식으로든 뭐든 간에. "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옥정진인은 약간 질린 얼굴을 했다. 하루에도 몇백만장 분량에 달하는 보고서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요점만을 추려내고 거기서 미래를 예측하고 결 과를 이끌어낸다. 중앙컴퓨터 태극부인과 링크된 채, 무리없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또 한명의 천재소년보다도, 그의 관점으로서는 이 쪽이 훨씬 천재였다.
" 이미 민중들에 의해 초토화되다시피한 머리를 치는 거니까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병력은 보 내야겠지. ...왠지 보냈다간 원성들을 것 같긴 하지만 말야. "
살짝 쓴웃음을 짓는다.
" 누굴 보낼 셈이지? " " 글쎄... 무성왕이 직접 갈 필요까진 없겠지만... 역시 과신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천상을 보낼까 해. " " ...아직 어린애잖나. " " 그래뵈도 [서기의 소비호(小飛虎)]라고 불리는 애야. 이걸로 실전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지도 모르지... "
마지막 말이 잦아든다.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실전경험이라는 것은 분명 잔혹한 일이기에.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수백, 수천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중압감이란 어떤 것인지 분명 겪 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터다.
" ...진심이냐? "
태공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옥정진인이 반문한다.
" ...물론이야. 그리고 무성왕은... 천상을 후계자로 삼을테고. 언젠가는 무성왕 대신 그 아이가 내 지시를 따르 게 되겠지. 싫든좋든 겪을 일이야. 영리한 아이니까 괜찮을거야... "
너처럼 되어버려도?
입술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집어삼킨다.
이미 12세에 감정을 잃어버린 장본인이 하는 말이다. 뭐라... 간섭할 권한은 없다.
" ...천화도 있잖나. "
대신 쓸데없는 반론.
" ...이미 선도의 반열에 오른 천화는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 수는 없어. 알면서 왜 그래? 옥정. "
금오의 침입 이전에도, 은하계에는 수많은 크고작은 싸움들이 있어왔다. 우주력 초기의 콜로니 반란부터, 우주해적, 그리고 현재의 금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 지구 어디에도 없을 광활한 검은 바다의 중압감을 버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계속적인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워프로 인한 시간의 다른 흐름, 무중력공간에서의 장시간 활동으로 인한 근육의 약화, 끊임없는 무음(無音)의 공간에서 오는 정신적인 압박감. 대부분은 그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지상의 인간들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다가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거기에 역 행하여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의미의 시간을 살아가게 되었다. 노화하지 않는 육체와, 퇴화하지 않는 두뇌.
보통 인간들에게 끝없는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고서(古書)에서 등장하는 명칭을 붙였다.
[선인(仙人)]-이라는.
일선에서 은퇴하여 어딘가를 방랑하고 있다는 태상노군(太上老君). 현재 은하연합군 - 곤륜 - 의 제 1 권력자 원시천존(元始天尊). 은하계 전체의 기록에서 말소되어버린, 몇천년 전의 한 선인을 합한, 최고최강(最古最强)의, 3대선인(三大仙人).
그 아래로 최고의 명성을 가진 12선인(十二仙人)중 하나가 바로 태공망의 고문관(顧問官)을 맡고 있는 눈 앞의 긴 흑발의 미남자. 옥정진인(玉鼎眞人)이었다.
그리고 이 소년은, 그런 옥정진인과, 같은 위치인 부사령관 보현진인(普賢眞人)은 물론, 다른 그 외 12선들에게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명실공히 제 2 권력자인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내심(內心)이 너무 여리다는 것이 소년을 잘 아는 사람들의 걱정이기는 했지만. - 그리고 소년 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소년을 여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최대의 의문이었지만.
"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마. 나탁이 따라갈테니까. "
옥정진인의 눈빛의 의미를 오해했는지, 태공망은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나탁은 분명 대공방위용 위성이 아니었던가? " " 그 난폭한 AI가 대공방위로 만족할 것 같아? 최전선공격용으로 돌려달라는 바람에... "
태을이 상당히 고생했었지. 라는 말을 눈빛으로 하는 태공망과, 이해한 듯 한숨을 내쉬는 옥정진인.
" 그래... 그럼 일은 다 끝난건가. " " 뭐, 일단은. " " 그래. 그럼. "
말을 딱딱 끊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옥정진인을 보며 태공망은 눈을 크게 떴다.
" 왜 그러... 엣!? "
옥정진인은 앉아있던 소년의 가슴에서 망토를 고정시키던 에메랄드 브로치를 끄르더니 검고 긴 망토와 하얀 모자 를 확 잡아챘다. 순간 굳어버린 소년에게 아랑곳없이 벨트와 늘어진 허리장식도 풀어버렸다. 장식 안에 매달려있 던 갖가지 물건 - 바늘같은 소형 무기, 갖가지 폭약의 재료들, 고성능 해커 키부터 아득한 구식의 문따는 도구까 지, ...사상이 의심스러운 종류들의 - 이 서로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깃이 잘 선 짙은 황색의 제복을 조심스럽게 벗겨주는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거부할 타이밍조차 놓쳐버리고는 얌 전히 앉아만 있는 태공망은 곧 노슬리브의, 길다란 셔츠만을 입은 간단한 차림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보패합금(...)으로 된 백은색의 목과 가슴보호대를 옆의 테이블 위에 얹어둔 옥정진인은, 눈을 크게 뜬 채 다소곳이(?) 앉아있는 얇은 옷차림의 소년을 너무나도 가볍게 안아들었다. (...뭔가... 이 시추에이션은...)
" 자, 자, 잠깐!! 옥정? " " 어지간히도 껴입었군... "
네가 그런 말 할 처지야? 라고 따지려던 태공망은 갑작스럽게 풀썩 눕혀지자 대꾸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지나치리만치 부드럽고 푹신한 워터베드(Water Bed)는... 그의 취향은 아닌 듯 한데.
" ...침대 바꿨어? " " 오늘만이다. 네 몸, 무리했는지 여기저기가 굳어있는데 푹 쉬어둬. " " 내 방에서 잘거야. 무슨... " " 보현이 네 방 전원을 모조리 꺼 놨다며? 그럼 문도 안 열릴거 아냐. " " ...... "
그제야 나즈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보현이라면 늦든 빠르든 자신이 어디로 튀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을거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잠도 자지 않을테니까.
단념의 한숨을 쉬며, 태공망이 말했다.
" 그렇다곤 해도 네 방 침대는 하나뿐이잖아. 넌 어디서 잘거야? " " 바닥에서. " " ...... "
다시금 침묵. 한 번 말을 꺼낸 이상,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하건말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거다. ...어쩌면 태공망을 기절시켜서라도, 재울 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한 번 꺼낸 말은 실행하는 그다.
" ...그럼, 같이 자자. " " 뭐? "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어버린 옥정진인에게 태공망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웃음을 흘렸다.
" 네가 바닥에서 자거나 할 경우, 난 절대로 안 잘거야. 억지로라도 재우겠다면, 난 대신 앞으로 최소 일주일은 철야로 일을 하겠어. 어떻게든 날 재우겠다면, 너도 같이 여기서 자. ...우주선 바닥은 차갑다구. "
파우스트의 고뇌가 이러했을까... 하는 고답적인 생각을 하며 옥정진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한 문장)
" ...알았다. 그러니까 협박은 관둬. " " 먼저 협박한 건 너야. "
소악마적인 미소를 띄운 채, 자리를 조금 비켜주었다. 침대는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옥정의 키가 큰데다가, 보통 협소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누워있을 경우 둘이 절천지 원수지간이 아닌 이상 절대로 뚝뚝 떨어지는 시추에이션은 있을 수가 없다. 당연히 옥정에게 밀착하게 된 태공망은, 그의 곤란한듯한 표정에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 다.
" 흐음... 누가 본다면 단단히 오해를 사겠는걸. " " ...태공망. " " 농담농담. 하지만 따뜻하니까,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
조금만... 이라고는 했지만, 확실히 피곤하긴 피곤했는지 몇 분 되지도 않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린다. 옥정진인은 곤란한 표정을 지우고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품 안의 작은 소년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 소년...이라면... [그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지도 모른다...
옥정은 머리를 쓰다듬던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별로 스스로 잠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