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What's your choice - All or Nothing? by. 조공명 ****************************************************************************************************************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듯한 - 이라는 독창성 제로의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흐른다. 분명히 그들은 승리한 쪽이거늘, 지금 홀 전체에 풍기는 분위기는 참담한 패자 못지 않다.
" ...후. "
아주 나직한 한숨 소리에, 차렷자세를 취한 전원은 바짝 긴장한 채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소년을 바라본다. - 결코 정면으로는 보지 못하고.
" -일단. 무성왕부 소속 제 4 행동대장 황천상. 무사귀환을 축하한다... 고 하고 싶지만, 그 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지? " " 예. "
말을 한 소년보다 어리게 보이는 단 한 명의 소년이 표정을 가다듬은채 대답했다.
" 기함이 폭발하기 직전, 나탁 형... LNT-12가 막아주었습니다. 정확한 상황판단은, 정신을 잃었던 터라... "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흐리는 천상을 거들 듯 보현진인이 말했다.
" 거기에 대해서는 태을진인님 쪽이 더 잘 알고 있겠죠. "
그 말에 뛰쳐나가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마구 소리지를듯한 기세의 태을진인의 어깨를 도덕진군이 잠시 잡아눌렀다. 무언의 압력에 조금 찔끔한 표정으로 태을진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LNT-12의 새로운 구현방식은 질량이 존재합니다. 거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접어두고... 질량은 있지만 형태가 고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아마도 폭발 직전에 천상군을 감싸고, 그 후 계속 우주를 표류한 듯 합니다. 천상군이 소지하고 있는 생명유지장치는 소형으로 그다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그와 자신을 가사상태로 만들어둔 채 본체인 위성에게 이끌리게 프로그램해두었더군요. " " 예. 정신 차려보니 본성이었거든요. 전투에 나가셨다는 보고를 듣고 바로 게이트를 넘어왔습니다. 아... 멋대로 굴어서 죄송합니다. "
우물거리던 천상이 살짝 위로 시선을 올렸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왠지 위압적으로 보이는 위치에 앉아있는 소년이 그제야 옅은 미소를 띄운다.
" 아니... 결과적으로는 전투의 흐름을 다시 우리쪽으로 돌려준 셈이다. 잘 돌아왔어. " " 예!! " " 그리고... LNT-12, 아니, 나탁. 너도 잘 해줬어. 기대 이상으로. "
아무런 반응도 없지만, 훤히 듣고 있을 것은 누구나 알고 있기에 그 무대포 AI의 현재 표정을 상상하며 피식피식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덤으로, 상황 때문에 아무나 붙잡고 나탁 자랑을 늘어놓을 수 없음을 엄청나게 아쉬워하는 태을진인의 표정도 굳어있던 분위기를 조금은 풀어주었다.
활짝 웃으며 천상이 뒤로 물러나자, 소년의 시선은 서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었다. 그러다가 멈추어선 곳.
" ...남궁 괄 장군. "
그나마 부드러워졌던 분위기는 다시금, -경직. 건드리기라도 하면 깨질듯한 불안정한 공간으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
평상시의 자신감 과잉의 당당한 표정은 약에 쓸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참담한 표정.
유일하게 지휘하던 부대의 반을 잃은 부대장의 표정이란, 주변사람들이 차마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랄까.
" ...그래. 확실히 그렇군. 명령위반, 지휘대 무단이탈, 개별행동,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
내용은 장난스러운데, 얼굴이 무표정하니 오히려 호통치는 것보다 사람을 긴장되게 한다.
" 아, 그렇군. 공적인 일에 사사로운 감정 개입. "
침묵 속에서 아직은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듯한 소년의 목소리만이 허공을 울린다. 여전히 차분한 표정의 소년과, 대조적으로 불안해보이는 어른들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된다.
" 남궁 괄 장군. 군법 위반에 따른 무기한 근신을 명합니다. "
차갑게 자르는 한 마디로 회의는 끝났다.
" 태공망!! " " 훗, 내가 이겼지, 보현, 천화? "
여유로이 복숭아를 넘기고 있던 태공망이 빙긋 웃었다. 승리의 브이 사인을 옆에 앉은 보현과 옥정, 그리고 천화에게 보내며.
" 음... 조금만 늦게 오지 그러셨어요, 무성왕. " " 으~ 정말 우리 아버지란 사람은!! "
난처한 미소를 짓는 보현진인과, 머리칼을 쥐어뜯는 천화. 그리고 이마에 식은땀을 한 방울 매단채 조용히 차를 마시는 옥정진인.
" 엥? 뭐, 뭐야? " " 굳이 사령관실까지 온 목적은-? "
빙글 말을 돌려버리며 싱글거리는 소년에게 황비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머리를 긁적였다.
" 그러니까.... "
" 신경쓸 거 없어. 문중이니까 이 정도라도 남은거겠지. "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엉망진창이 된 함대들을 바라보는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에는 조금의 감흥도 없다. 있다면 그것은 나지막한 비웃음. 그 누구를 향해서도 아닌 자신에게 보내는.
" 왕자... " " [은]에 연락해. 원조받기로 한 군대를 모조리 끌고 와. 일주일 이내로. 곤륜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 줄 리 없으니까. " " 전부... 말인가? "
의아한 표정의 문중에게 양전이 피식 웃어보였다. 완전히 다 털어버린듯한 홀가분한 미소.
...바꾸어 말하면 텅 비어버린.
" 전부 다. 그럴려면 왕천군에게 연락해서, 늘 하던것처럼 은에 정보를 흘리라고 해야겠지." " 어떤 정보 말인가? " " [전쟁은 곧 끝난다.] 라는. " " 왕자...? "
놀람을 감추지도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문중의 시선에 양전은 다시금 미소를 머금는다.
" ...곧 끝날거야... "
몸을 돌리며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빼내버렸다.
에메랄드(翡翠玉). ...옛날 인류의 발상지였던 별에서는, 파마(破魔)의 보석이라 불렸다지.
귀인(貴人)들이,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들었다.
과연 이 돌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이 선명한 녹색이, 나라는 마(魔)에게서 과연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까...?
...무린가요. 이미 둘로 나뉘어버린 마음은.
하나이면서도 둘인 물건은, 떼어놓는 법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서로를 부르는 힘이 무슨 일을 불러일으킬 지 모른다던가요...?
쿡... 그렇군요.
전 단지, 이 보석의 힘에 홀려있을 뿐입니다.
분신을 찾아가려는 힘에 끌려 움직이는 것 뿐이에요.
...그래도 저를, 원망하시겠죠?
" 금오는, 은에 원조를 받을거야. 애시당초 그걸 위해 서로 조약을 맺었던 걸테니까. " " 은의 군사력이라면 저번 작전으로 무너진 금오군이라도, 금새 회복할 수 있을텐데. " " 물론 그렇겠지. "
가볍게 웃으며 옥정진인의 걱정어린 말을 넘겨버린다.
" 은의 군사력은 이 은하연방군과도 맞먹을 정도니까, 은이 본격적으로 가담한다면 우리쪽이 오히려 불리해질지도 모르지. ...게다가 저번 작전에는 금오의 총사가 없었을 때니까, 이번에 그가 다시 진두지휘를 한다면 병사들 사기도 대개 회복될거야. " " 그럼 뭐야, 우리도 주에게 협조를 받아야 하나? "
천화의 떨떠름한 말투에 태공망이 고개를 저었다.
" 그럴 것 없어. "
지나치게 확언하는 그를 보며 모두 의아한 얼굴이 된다.
" 보현, 은의 군대들이 금오에 집결하는 시기를 알아내봐. 뭣하다면 은과 금오에 뿌려놓은 첩자들을 모두 움직여도 좋아. 발각나도 상관없다고 해. " " 어, 어이. 사숙. 뭐야 그 다 끝난 것 같은 말투는? "
눈만 깜빡거리는 천화에게 태공망은 평소와 전혀 다를바 없는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 다 끝날거야. 곧. "
볼 끝을 가볍게 스치는 귀걸이의 싸늘한 감촉에 무심코 그것을 어루만진다.
" 그러니까 무성왕, 남궁 괄 장군의 처분에 대해 그렇게 염려할 필요 없어. 당신 탓도 아닐뿐더러... "
나지막한 미소가 왜 그렇게 불안해보이는건지.
" ...명령은 선고한 자가 없어진다면 그 시점에서 무효니까. "
마지막 말은 너무 나지막해서, 바로 옆에 있던 보현진인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한 듯 했다.
" 사숙... 무슨 소리 하는거야? "
들었든 듣지 못했든, 그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것은 솔직한 천화였다. 조금은 추궁하는 듯한, 대답을 요구하는 말투에 태공망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휙 들었다.
한껏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그다.
" 뭐~야 너희들!! 내가 끝난다면 끝나는거야! 내 말 못 믿겠다는 거야? "
급변한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이~ 것~ 들~ 이~~~!! "
어느새 여느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금방이라도 들고 있던 지휘대를 던질 것 같은 포즈로 의자 위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태공망을 보는 그들의 눈에는 어느새 불안감이 엷어져있었다. ...하지만 아주 없어져버렸다면 그건 역시 거짓말이겠지.
무엇을 꾸미고 있는걸까.
왜 혼자만... 떠맡으려 하는걸까...
의외로 평온한 일주일이 흘렀다. 모두의 생각과는 달리 태공망은 휘청거리는 금오를 굳이 공격하려들지 않았고, 덕분이랄까 금오는 서서히 회복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군대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모두 재편성되어 언제라도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태공망은 공격 명령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연이은 부하들이나 부관들의 공격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심드렁하니 의자에 걸터앉아 손을 내저을 뿐.
" 싸운다면, 희생은 최소한인게 좋아. 그렇지? "
뜻 모를 말만을 내뱉으며.
" ...망이, 내일 정도면 은의 군이 금오와 합류하겠어. 원군의 규모는 은 전체 군사병력의 94퍼센트. 이걸로 금오의 병력은 거의 100퍼센트 회복이야. 이로서 다시 전력은 평형상태야. " " 꽤나 힘쓰는군. 달기인가 아니면...? "
낮게 미소짓던 태공망이 은푸른색 머리의 부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기밀작전실인 이 곳은, 기본적으로 총사와 부총사 외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에, 근위대장인 천화도 발을 들일 수 없었다. 큰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친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보현진인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쓰게 웃었다.
" [이번 정벌로 전쟁은 끝난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더군. 은 궁정 내에서. " " 호오. " " 형식적으로 은은 금오의 점령을 받은 상태지만, 그 형식이란 것에 따르면 아직도 은은 은하연방의 일원이야. 이런 시기에 은을 쳐서 이미지를 손상시킬 나라는 없을테니 국방쪽에 지금은 힘을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나보지. ...그리고 그 말대로, [금오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다면, ...은으로서는 나쁠 게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달기치고는 뭔가 너무 간단하게 파병해 준 느낌이 들어... "
[치고는]이라는 말에 따르는 부연설명따위 할 필요도 없다. 그건 눈 앞의 사람이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의 일이니까.
" ...여전히 예리하구나, 보현. 하지만 말이지.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게 하나 있어. " " 응? "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보현진인을 보고는 킥 웃음을 터트린다.
" 달기에게 있어서 은은, 단지 잠시의 휴식처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은에 있은지 너무 오래됐어. 슬슬 식상할 때도 됐지. ...하지만 그녀의 도움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걸. " " 무슨...? "
마지막 말은 희미하게 잦아들어, 보현진인은 되물어야했다.
" 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냐. 자...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 " 준비? "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쭉 뻗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낸다.
" 출진준비. " " 막 합류했을때의 허를 찌르려는 거야? "
말을 하고도 아니라는 것은 느끼고 있다. 기왕 허를 찌르려면, 차라리 그때 바로 연타를 먹이는 것이 나았으리라.
그런 보현진인의 생각에 긍정이라도 하듯, 나직히 웃으며 태공망은 몸을 돌렸다.
" 그럼, 준비 부탁해. " " 얼마나 출진시킬거지? " " 전부 다. " " 에...!? " " 그럼~ "
그대로 나가버리려는 태공망이 멈칫-한다. 본인의 의지는 아니다. 팔목을 잡고 있는 친우를, 조금은 책망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 보현...? " " 뭘 생각하고 있는거야...? "
태공망은 그 무거운 분위기 와중에도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던 친구인데. 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태공망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채 말했다.
" 금오를 쳐부술 생각. " " 스스로를 희생할 셈이야? -아니, 그럴 셈이지?! "
역시 친구란 대단한거군. ...쓸데없는 감탄을 하며 태공망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 희생같은 게 아냐. 당연한 일이지. " " 뭐가 당연해? 어째서 망이는... " " [선인이 없는 인간계를 만들고 싶다]고 내가 말했었지? "
태공망의 갑작스런 반문에 보현진인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긍정의 반응에 그가 다시 빙긋 웃었다.
" 기본적으로는 요선을 말한거지만... 결국은 다 마찬가지야. 선도따위 세상에 필요없어. 영원히 사는 자들은 아무것도 남겨선 안돼.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 젖어버린 자들은 아무것에도 개의치않아.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고 항의한다면, 그들은 아마 연못에 몇 마리의 개구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게속 돌을 던진다고 말할지도 몰라. 그들에게 남아도는 건 시간이니까. 그들에게 영생이 주어졌다면,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사는 자들을 건드려선 안돼.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일이 되는지 인식조차 하지 않겠지. "
반문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그 [영생을 사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있는, 같은 [영생을 살고 있는 자]의 일원으로서. ...반박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 거창하게 말한 것 같지만 나는, 그 [영생을 사는 자]들의 시간때우기 용의 장난이란 것에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내 개인적 복수지. 그러니까 내 행동은 당연한거야. 희생이라는 멋진 고유명사를 붙일 필요는 없어. " " ...망이가 누구에게 원한이 있는 건지, 자세히는 몰라. "
어깨를 으쓱이며 팔을 빼내는 태공망을 바라보지 않은채, 고개를 숙이며 보현진인이 말했다.
" 하지만 이번일로 망이가 어떻게 된다면, 그렇게라도 금오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걸로 전부 다 끝나는거야, 네 복수는? "
대답할 수 없다. 쓴웃음만을 보내며 방을 나선다.
...여전히 예리한 녀석.
그래. 아무것도 한 일은 없는 거잖아.
난,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무엇 하나 보복해주지 못했어. 금오가 멸망하고 은이 무너져도, 그들은 아마 눈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그런데 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려하는거지?
...너의 존재가...
...설마 그들을 향한 내 복수심보다도 더 큰 존재라는 거야?
바보구나.... 난.
무기질의 느낌을 주는 방 안. 아무런 장식도 없는 금속질감의 벽은 싸늘함밖에는 전해주지 않는다. 상대방의 총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인테리어에 방 주인은 굳이 괘념치 않는 듯, 방 안에서 유일하게 포근한 물건인 침대에 걸터앉은 푸른 머리칼의 미청년은 눈 앞에 떠오른 패널에 그 희고 가는 손가락을 움직인다. 입수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한번도 써본 적은 없는 번호.
신호음이 간다.
의외. 보안이 걸려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연결되는 것을 보고 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이런 개인 전화로 해킹이나 그 외 네트 크라임(Net Crime)따위를 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째 신호음이 가다가 멈춘다.
- ...양전? -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보이소프라노의 맑은 목소리가 수신기 너머로 울린다.
새파란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딱 한 번 봤었던 그 푸르디 푸른 바다의 내음이 날 것만 같았다. 바다를 좋아했었기에, 그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자신을 보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 달콤한 속삭임과 키스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 할 수 있을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말이지, 얼마든지 사랑하는 척 할 수 있는 거야.